가고오고오고가고 배부른 배낭을 메고 나선 길은 막막하다. 뜨거운 커피를 김치 국물처럼 꿀꺽꿀꺽 들이켰다. 삼월이 손길도 아니고, 바짓단을 휘감아 도는 매운 바람. 그래서인가, 서성이는 발길들이 두서 없다. 일단의 소요에 따라 등장한 일가족. 짐칸에 가방 꾸러미를 집어넣은 노부부가 버스에 올랐다.. 不平則鳴 2013.12.10
열매가 맺혔으니 전화기에 귀를 대고 숨죽인다. 간단없이 이어지는 전화 연결음. 부조로 남은 맞은편 벽 담쟁이 무늬를 눈으로 그렸다. 의미 없이 세다가는 일곱, 여덞 번째인가, 통화종료를 눌렀다. '전화를 안받는다니.' 파발마처럼 쫓아간 신호음이 사그라드는 허공에 들이차는 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 不平則鳴 2013.12.03
얼음벽 하나같이 자라목인 길거리 사람들. 기온은 어느 날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씩 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여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처럼 내성을 키운 다음에야 겨울로 접어든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이야말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않는가. 사무실 안 영어 책임자와 과학 책임.. 不平則鳴 2013.11.26
꿈길 나뒹굴어 켜켜로 쌓인 낙엽들. 밟으면 지난 시간의 한숨이 배어난다. 아무려면 어때. 생기야 지워졌어도 푸근하게 받아들여야지. 건둥거리는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밤새 낙타 등 같은 길을 오르내렸다. 마침 등성이 위에서 제 몸을 불사르는 단풍나무와 맞닥뜨렸다. 허공에 .. 不平則鳴 2013.11.19
길에서 무언가 나누려고 한 기억은 어렴풋하다만 주어진 가을을 다아 쓰고서야 생각해냈다 진작 아무것도 나누어 갖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칼바람 들이찬 광야에서 어쩌면 그나마의 기억마저 내동댕이쳐 싸늘하게 얼려 버릴지도 모르는 일 색.계 OST 중, Wong Chia Chi's Theme 不平則鳴 2013.11.12
우리를 위하여 부지런한 어머니. 한겨울 동면도 없이 나대 미움 받는 여우처럼 악착같은 살이를 영위했다. 때로는 그게 단면적 오해로 비쳐 동네 아낙들에게 질시를 받지만 그래도 의연하다. 그 부지런함으로 인하여 우리야말로 고역이었다. 잠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아 걸핏하면 부른다. 생각나는 .. 不平則鳴 2013.11.08
가을나무 쌈판이 벌어졌다. 고성도 터진다. 처음에는 저네들끼리의 일이니 싶어 관여하지 않았다. 두고 보려니 날이 갈수록 싸움이 격해졌다. 그럴수록 앙금이 생겨 이제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릉댄다. 언뜻 보면 사소한 일에도 일말의 양보 없이 대치하는 게 어느 누구 편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되.. 不平則鳴 2013.11.05
가을 싱크로율 진단 애기꽃을 달고 화사하게 웃던 손바닥 만한 버들마편초. 비 올 적마다 지은씨가 긴 손가락으로 감싸쥐어 뒤뜰 화단가에 갖다 두곤 했는데 어느덧 침묵에 잠겼다. 오종종한 꽃은 사그라들고, 이제 잎과 줄기가 말라 뒤틀린 채 시멘트 담장 아래 뉘엿거리는 햇살 아래서 애처럽다. 겨울이 코.. 不平則鳴 2013.11.01
가을 저녁 아늑한 볕이 내린다. 누워 딩굴며 마른 풀의 까칠한 감촉을 즐기거나 낯을 간지럽히는 노란 햇살을 잘근잘근 씹기도 했다. 진작 서둘러 삭정이로나마 망태를 채웠다. 마침 산등성이에 상태가 보인다. 저만큼 아랫마을 재중이도 나타나고. 솟아나듯 삼수와 경만이 등 아이들이 모여들어 .. 發憤抒情 2013.10.29
생각 수선 '이리 오세요.' 할머니가 뒤돌아보며 손짓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장의자 두어 개 뒤편에 앉아 눈길을 앞에 둔 채 강퍅한 표정으로 대꾸가 없다. 차임벨이 울리며 다른 대기자가 담당에게 다가간다. '이번에는 당신 차례에요.' 채근하는 할머니. 아무래도 자기 양반이 못 미덥다.. 不平則鳴 20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