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라 봄 슬쩍 체중을 싣는 계집애 하나. 복잡한 입구에서 아까 밀려난 듯한데, 그쪽 산 만한 덩치의 깍두기머리에게 아무 소리 못하고 나를 밀어붙인다. 여느 쪽도 여자이기에 별 수 없이 끼어 옴쭉달싹 못하고 몇 정거장을 간다. 유난히도 붐비네. 그래도 이건 너무 해. 게임에 열중하는지 불규칙.. 不平則鳴 2014.04.08
그대, 봄으로 오라 오데사의 프리보츠 수산물시장에 첼로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시장 바닥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첼리스트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든 사람이 차례로 합세했다. 북적거리며 장을 보던 시민들이 어리둥절할 때 통로 한가운데 지휘자가 나타나 손.. 不平則鳴 2014.04.04
소음 매개 무심코 손전화를 열었다. 낯선 목소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여직원이라고 했다. 전화기 안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심스레 묻는다. '골프 좋아하세요?' '요즘엔 안칩니다만 왜 그러시죠?' '그게 저, 아래층에서 골프를 치는 듯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요.' '그럴 리가요? 아마 잘못 들.. 不平則鳴 2014.04.01
봄밤 적요 술이 올라 불콰하여 주택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긴 늘 선경이네요.' '선경에서 해로하는 두 분이라, 부럽습니다....하하' Y선배 생일쯤에는 연례행사로 집에 갔다. 선배가 화초나 나무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어 옥상화단이 식물원이다. 특히 분재에 정성을 쏟아 경이로운 작품들이 늘.. 不平則鳴 2014.03.27
새야 날자 분주하게 몰려다니는 사람들. 때로 달려드는 이를 막기 위해 손을 가슴으로 모아 웅크린 채 버티기도 한다.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가 벅차다. 더러는 비켜가고, 더러는 부딪치며 사라진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글쎄요.' 열정적이어야 한다. 헌데 그런 적 있었던가. 늘 건성으로 지.. 햇빛마당 2014.03.19
나비의 꿈 식구들 살이에 행여 마가 낄까봐 안볼 것, 듣지 말 것, 마주치지 않을 것 등 금기를 정해 두고 생각나면 되뇌이는 어머니. 검(劍)의 달인이 미리 살기(殺氣)를 피해 가듯 삶이 온전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만만한가. 일기가 불손한 철, 주변도 하수상해 제반 일을 내쳐두었다. 면도를 하.. 不平則鳴 2014.03.12
봄날 변주곡 이른 아침 냉기에 종종걸음치는 사람들. 꽃샘추위라지, 매운 맞바람으로 눈물을 글썽거리자 같이 가던 일행이 웃었다. '마치 첫사랑 같은 바람입니다.' 봄이 오는 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슬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나도 웃었다. 첫사랑이었을까. 아련한 시절을 더듬자 떠오.. 不平則鳴 2014.03.07
그대에게도 봄을 어깨에 봄 햇살을 두르고 짐자전거 페달을 밟는 저 여자. 가끔 보던 우중충한 분위기가 아니다. 찌푸린 미간이 펴져 감은 것처럼 보이던 눈이 비로소 커졌다. 내 옆을 지날 때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쪽을 지듯 늘 고수하는 머리 형태, 꽁무니를 묶었어도 곱슬머리 몇 가닥이 헝클.. 不平則鳴 2014.03.04
사랑 하나 여지껏 눈밭에서 서성이는 당신 메마르고 터진 겨울나무 수피를 짚고 훔쳐보는 사이 샘물처럼 들이차는 서늘한 기억 어느 때 이 숲에 흘리고 간 한 뭉텅이의 시간을 기억해냈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상큼한 머리 내음과 아련한 눈길 어우러진 곳마다 두드리면 깨어나 형형색색의 꽃으로 .. 不平則鳴 2014.02.25
우리가 견뎌내는 그것 쟁이가 득시글대는 시대. 저마다 자기 좋은 대로 산다면 썩 괜찮지 않은가. 풍각을 울리기 위해 애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리를 다듬어 내려는 이도 있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자기 세상을 만들기에 은연중 존경스럽기도 하다. 업무상 주변에 글쟁이.. 不平則鳴 201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