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으로 종현아, 장미 꽃다발을 든 네가 들어서자 여자 친구들이 환호성을 냈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 눈치 없는 녀석아. 네 집사람한테 가려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일지라도 지나치던가. 억지로 들렀으면 식당 카운터에라도 꽃다발을 슬쩍 맡겨 두고 왔어야지, 그게 뭐냐? 물론 이제까지.. 不平則鳴 2010.06.08
거기, 숲에서 휴일 다음의 복도는, 흰 페인트 칠을 해 병원 같다. 도료 냄새가 가시지 않아 숨을 참으며 걸음을 뗀다. 가만, 방금 엇갈린 저 여자, 어째 얼굴이 낯익은데 누구더라. 별안간 구슬이 튀듯 환한 인사가 발길을 잡는다. 돌아보는데 눈을 반쯤 감으며 배시시 웃는 얼굴. 얼른 알아채지 못해 어.. 不平則鳴 2010.06.04
봄날은 간다 학교 담장을 따라 걸었다. 늘어선 나무들마다 기지개를 하듯 벋은 팔에 제법 힘이 들었다. 유록색 옷까지 의연하게 걸쳤으니. 순식간에 사방 정경이 바뀌었다. 화사하던 꽃은 어디로 갔는가. 숨을 들이킨다. 쟁강거리며 떠도는 싱그러운 향. 손바닥을 펴든다. 간들간들한 햇살이 얹혀 소.. 不平則鳴 2010.05.27
소리 없는 아우성 '끼인세대'니 '쉰세대'니 '저주받은 세대'라는 말 등을 접한다. 말은 어법에 따라 말로서의 정의가 내려져야 가치를 지니지만 요즘엔 확장된 미디어 탓인지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쉽게 퍼뜨려진다. '말이 말 같지 않아 흘려 들으면 되지' 하고 지나치기엔 듣는 빈도가 잦아 새삼 되삭일 정.. 不平則鳴 2010.05.26
[가족♥]그리고 오랫동안 당신이 누운 자리가 비었다. 대신 한낮 열어 둔 창으로 든 노란 햇살이 반쯤 점령했다. 달려갈 적마다 눈을 꼬옥 감고 계시던 어머니. 대체 어떤 행복한 꿈이길래 그토록 쉬임없이 꾸어야 했을까. 더러 말간 미소를 기대하기도 한다. 허나 표정이야 평온하지만 결코 입가에 웃음.. 햇빛마당 2010.05.19
말의 부재 잎이 꽃을 지우는 중이라 어느새 너저분한 철쭉. 꽃 닮은 할머니가 기역자로 굽은 허리로 땅만 보고 있다. 이가 듬성듬성한 잇몸을 드러내며 입맛을 다시는데. 아암, 모름지기 사람이란 겸손해야제. 등에 하늘을 인 것만도 모자라는지, 끄는 기역자 리어카에 산더미처럼 쌓아 동앗줄로 꽁.. 不平則鳴 2010.05.18
부풀어라, 오월의 숲이여 어릴 적 겨울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이들은 대개 훌쩍이며 다녔다. 콧물을 훔쳐 반들반들했던 소매 끝단. 겨울이면 동생은 여린 손발이 동상으로 고생했다. 추위는 깊고 깊은 골짜기여서 내려가면 오르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골짜기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 시린 손을 입김으로 .. 不平則鳴 2010.05.13
사는 일 9곱하기9까지 외워야 하는 구구단.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십이단까지 외우게 한다. 인도에서는 십구단을 가르친다고 한다. 구구단에 그치지 않고 십구단까지 확장시켜 외우는 것이 좋은가. 참고로 말하자면, 인도 학생이 다른 나라 학생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보고는 없다. 십구단을 외.. 不平則鳴 2010.05.10
아마도 삼삼오오 모여 얘기에 열중하면서도 바깥 동정을 살피는 사람들. 웅성거림을 스피커 음이 휘젓는다. 왕왕거리는 소리가 그치자 금방 잡담이 커졌다. 엉킨 소음을 분간해내거나 알아 듣지 못해 귀를 쫑긋 세운 사람들조차 난감한 표정이다. "뭔 말이래?" "글씨, 안즉 배가 떠나지 못한다는 .. 不平則鳴 2010.05.04
자리잡기 집안 행사가 있어 모이기로 했다. 이모저모 따지고는 출발시각을 정해 일러둔다. 식구들 반응이 시원찮더라니, 막상 당일이 되자 삐걱이며 발목을 잡는다. '꼭 가야 하느냐' 에서부터 '빠지면 안되느냐', '다음에 가면 어떻겠느냐'는 등 주절주절 놓이는 장광설. 화를 눌러 참느라 붉으락.. 不平則鳴 201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