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을 가고 시름시름 앓은 계절. 가을은 절정 무렵 스스로의 숨통을 미련없이 끊어버린다. 가로수 아래 섰다. 메마르고 갈라터진 수피를 어루만지며. 마주보는 가게에서 쫓아 나온 불빛이 발 아래를 보듬는다. 지난한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물씬물씬 묻어난다. 구비마다 겉잡을 수 없는 격랑으로 .. 不平則鳴 2012.11.19
우리가 통하는 법 시울님과 深溪님의 십일월 포스팅인 '문'. 우연히도 같다. 두 분 포스팅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문은 길과 맞닿아 있으며 소통의 첫걸음이다. 공감을 부르는 소통은 곧 세상이며, 진정성 있는 소통과 교감이야말로 우리 사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다. 천지를 물들이던 단풍이 한순간에 스.. 不平則鳴 2012.11.15
십일월 인디언 시간의 정배열 속에 익숙해지도록 견디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떨어지는 건 나뭇잎의 일이다. 내가 가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하늘까지 닿을 요량이었지만 발이 천근만근이어서 바람이나 눈비에도 찌들어 곧잘 허물어질 뻔했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고 기울면 .. 不平則鳴 2012.11.12
이제 숨고르기 한밤중에 깨는 일이 잦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가려움이야말로 괴롭다. 깁스 안쪽이 가려우면 잠이 달아나는 건 물론 수반된 답답함이 중압감을 불러 숨이 막혔다. 어릴 적 나쁜 꿈을 꾸며 눌린 가위도 이보다 나아. 누워 견딜 일이 아니다. 목발을 짚고 뒤뚱거리며 나가 책이나 티브이, 컴.. 不平則鳴 2012.11.06
곧게 선다는 것 명절 귀성 행렬, 이골이 붙어 괜찮지 않냐고? 갇혀 있어 봐라, 좀만 쑤실까. 꽉 막힌 도로에서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하던 게 벌써 수 시간을 넘겼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돼. 급기야 눈앞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왔다. 근방 산에 올랐다가 느지막히 가자. 등산용구도 챙겨왔으니 말이야. .. 不平則鳴 2012.11.02
둥글다는 것 옆으로 누웠다. 설마 가학적 취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 다리를 구부려라. 무릎을 가슴에 대라. 주문에 따라 표현 연기자처럼 애를 쓴다. 간호사는 가급적 내 몸을 둥글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아아, 몸을 유연하게 하는 체조라도 익혀 둘걸. 머리를 숙여 무릎에 맞닿게 하고 양팔로 접은 다.. 不平則鳴 2012.10.30
시간의 갈피 중 자기 키 만한 할인마트 쇼핑카트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 오랜만에 장을 보아 식구들 일상용품이 그득하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에 문이나 턱에 걸려 산더미 같은 물건 일부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부리나케 주워 담으며 서두르는 걸음. 앞에서 키가 육척은 됨직한 남편이 빈손으로 털레.. 不平則鳴 2012.10.23
열 개째의 구슬 일상에 차단막이 내린 듯하다. 창 밖에 난무하는 가을햇살. 바람에 햇살이 몰리다가 성글게 되기도 했다. 누워 있는 참에 불쑥 들어온 후배. 일어나 자세를 잡기도 전에 말을 건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아무런 생각도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진행중인 일의 앞뒤와 일정 등이 뒤엉.. 不平則鳴 2012.10.18
우리가 빵을 먹을 때 시월은 종점에 들어선 버스처럼 시동을 껐다. 자정을 넘겨 도착한 기차가 곧장 정비창으로 돌아가듯 금새 숨 죽이고는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렀다. 가을로 들이찬 빈들이 고즈넉하다. 마른 싸릿대 끝에서 강쇠바람에 큰 눈을 굴리던 고추잠자리는 화석이 되었으며, 오후 조막햇빛이 간신.. 不平則鳴 2012.10.15
달의 부재 한가위 달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어릴 적처럼 소원을 빌었느냐고도. 언제 이 도시를 떠났던가. 화사한 시절을 보낸 꽃들. 이슬에 젖어 후줄근한 화단 백일홍을 못본 척 지나쳤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이 낯설다. 어린 시절을 딩굴어 요람 같은 곳이었는데. 이른 시각부터.. 不平則鳴 2012.10.12